강릉 여행 2일차, 정동진과 주문진
by tripcompany93 · Published · Updated
포스팅 목차
정동진, 주문진, 바로방과 장칼국수
강릉여행 1일차에서 이어집니다.시내의 중앙시장에서 뜨끈한 아침으로 시작해 정동진, 주문진을 하루만에 돌아보는 약간은 무리한 일정이었습니다. 특히 뚜벅이라면요. 강릉을 대표하는 두 바닷가 마을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해돋이 명소, 그리고 어시장. 숙소가 강릉 시내인지라 정동진 해돋이는 이번엔 무리였지만요.
광덕식당, 소머리국밥
- 강원 강릉시 중앙시장길 22-3
- 07:00 – 20:30 마지막주문20:00/재료소진시 조기마감 / 16:00 – 17:00 재료준비, 브레이크타임 / 화요일 휴무
- http://naver.me/GKovS6z0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이 걸을 예정이기에 뜨끈한 국밥이 필요했습니다. 어제 미리 봐뒀던 강릉 중앙시장의 소머리국밥 골목으로 들어옵니다. 월요일 아침, 그것도 시장 시간으로는 꽤 늦은 9시 즈음이었기에 사람이 그리 많진 않습니다.
시장 골목의 국밥집마다 커다란 솥이 두세개씩 뭉쳐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김 사이사이에 국물의 구수한 냄새가 자신의 존재를 알립니다. 아저씨는 머릿고기를 무심하게 툭툭 썰어냅니다. 가볍게 잘리는 고기의 단면 사이사이에 맺히는 육즙을 보니 갑자기 너무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강원도 시장이라고 국밥이 절대 저렴하진 않네요. 강남이나 백화점 같은 정말 비싼 동네를 제외한, 나머지 서울의 국밥집과 비슷한 가격입니다. 저희 집 근처 순대국밥도 일반이 7천원, 특이 8천원이거든요. 아까 밖에서 봤을 때 따로 닭 냄새가 나진 않았는데 닭국밥이 있는게 조금 궁금해 물어봤습니다. 아저씨 왈.
소 육수에 닭고기 들어간 거에요. 아주 맛있어요.
하지만 소머리국밥 골목이니 그냥 소머리국밥을 시켰습니다. 닭국밥 골목이었다면 아마 상황이 달랐겠죠?
뿌옇고 진한 국물이 아니라 반투명한 국물입니다. 뿌연 곰탕과 투명한 갈비탕 중간의 어딘가. 머리국밥다게 살코기만 있기보단 부속 고기들이 좀 다양하게 들어갔습니다. 파와 후추 향이 시원합니다. 국밥은 나오마자 밥을 말아먹는 걸 선호합니다. 쌀알이 국물에 불면서 진한 향을 빨아들이죠. 전 그게 국밥의 정수라 생각합니다.
정동진
- 위치 : 강릉 시내 남동쪽 바닷가, 7~8km 정도 거리
- 주요 볼거리 : 해돋이 명소, 썬크루즈 비치크루즈 호텔 리조트, 정동심곡바다부채길
강릉 역
정동진으로 갈 땐 기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강릉 역은 2018년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새로 깔끔하게 지어졌습니다. 낮은 원통형 역사 모양이 마치 요즘 나오는 예쁜 스피커같습니다.
정동진을 지나 저 아래쪽 동해 삼척까지 운행하는 열차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없으면 꼭 영화에서는 귀신이 나오고 그러던데. 대낮이니 그럴 리는 없겠죠.
속초는 시외버스터미널이든 고속버스터미널이든 둘 다 바다와 굉장히 가까워요. 걸어서 간다면 오 분 정도면 닿을 정도로요. 하지만 강릉은 훨씬 예전부터 강원도의 대도시였던 곳이고 또 그런 탓에 평야가 꽤 넓은 편입니다. 자연스럽게 시내도 해안선에서 멀리 형성되었고 기차, 버스터미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서 출발한 기차는 먼저 동남쪽을 향해 달리다 동해를 만나면 그제서야 방향을 틀어 해안선을 따라 내려갑니다.
강릉 시내에서 정동진까지 기차로는 약 20분, 정말 짧은 거리인데 그 중 이렇게 바다와 마주하는 구간은 그리 길지 않아요. 5분은 되려나? 머릿속에 풍경을 채 담기도 전에 정동진에 도착해버리는 기차입니다.
경복궁의 정동쪽
모래시계는 1995년에 방영했습니다. 전 1993년에 태어났는데 사실 모래시계 모래시계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어요. 저에게 강릉의 드라마 하면 역시 도깨비인데, 큰삼촌 세대한테는 그런 미디어가 바로 모래시계겠죠?
멀리 보이는 배 모양 건물이 바로 강릉에서 제일 유명한 호텔인 정동진 썬크루즈입니다. 주변에 같은 친구가 많은 강릉 강문, 경포쪽 호텔들보다 많이 외로워 보입니다.
썬크루즈를 등지고 바라본 정동진 역과 강릉 시내 방향. 시야 닿는 끝까지 뻗은 모래톱의 구불구불한 곡선이 마음에 듭니다. 실제로 운동화를 신고 걸으려니 발이 푹푹 빠져서 힘들지만요.
레일바이크는 시간 박물관이나 공원과 역 사이를 운행합니다. 편도는 아니에요. 역에서 출발하면 역으로, 공원에서 출발하면 공원으로 돌아오는데 1인용은 없습니다.
정동진의 시퍼렇게 투명한 바닷물은 그 바닥까지 속을 훤히 드러냅니다. 강릉은 온대도 아닌 냉대습윤기후에 속합니다. 똑같이 투명하다 해도 저 이역만리 남쪽의 열대 바다, 그리고 제주도같은 아열대의 맑은 해변과는 느낌이 달라요. 어릴 때 자주 읽던 무협지에 엄청나게 차가운 물이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겉보기로는 평범하지만 강한 내공 없이 그 물을 마시면 온 몸이 얼어붙어 죽는 무서운 설정이었어요. 겨울이라 해도 이 바다가 그렇게 차갑진 않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무협지 생각이 났습니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속초에 외옹치라는 유명한 암석해안 산책길이 있어요. 위에 롯데리조트가 들어선 곳인데, 강릉에도 비슷한 길이 있습니다. 여긴 바다부채길이에요. 입구는 아까 봤었던 언덕 위의 썬크루즈 호텔 주차장. 걸어서 접근하려면 그 위쪽까지 그대로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이 너머에는 조각공원이 있습니다. 뒤로는 넓다란 호텔 주차장이고 그 구석에 바다부채길 입구가 있고요. 썬크루즈 호텔이 해발 60미터라고 하니까 약 20층 높이를 그대로 올라갔다가 다시 도로 내려가는 셈입니다. 여름이면 땀을 한 다라이는 흘려야 산책이 시작되겠네요.
티켓은 2천원. 거리는 약 3km 정도 됩니다. 원래는 종착점인 심곡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정동진으로 돌아올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 불어닥친 태풍으로 인해 산책길이 손상된 상황. 중간 부분이 끊겨버렸어요.
왠지 아침부터 구름이 살짝 끼는 게 불안하더니 그 썬크루즈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이에 태양이 숨어버렸습니다. 유리처럼 청아한 수면과 그 속을 들여다보려면 햇빛이 꼭 필요한데. 그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이 100이라면 구름 아래 흐린 바다는 5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시 60미터 언덕 계단을 걸어올라가는 중에 땀을 반 바가지 더 흘린 건 덤이고요.
정동진에서 강릉 시내로 돌아올 땐 버스를 탔습니다. 노면 상태가 그리 쾌적하지 않기 때문에 몸은 이리저리 엔진 가락에 따라 흔들립니다. 하지만 기차와는 다른 감성이 있습니다. 덜덜거리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밖을 바라보니 어느 새 강릉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바로방
- 강원 강릉시 경강로 2092
- 매일 10:30 – 00:00 재료소진시까지 / 일요일 휴무
- http://naver.me/FuVEWT50
한국의 유명 여행지에는 예쁜 카페와 베이커리가 많습니다. 트렌디하고 자체 개발한 메뉴도 많고 치아바타도 있고 그런 곳. 바로방은 그런 친구들과는 열 발짝 정도 떨어진 클래식한 시장 빵집입니다. 삼대천왕에 나왔다나요.
굉장히 작습니다. 바로 앞에서 빵을 만드는 게 다 보일 정도에요. 가격이 착합니다. 제 마음이 그런 만큼요. 근데 전부 디저트 빵이라 한 번에 여러개 먹긴 힘들어 보여요. 열심히 걷다가 당 떨어질 때 중간에 하나씩 먹으면 딱입니다.
하지만 기왕 온 김에 좀 무리해서 여러가지를 먹기로 했습니다. 제가 먹은 빵은 세 가지, 슈크림과 소보로, 그리고 야채빵입니다.
요새 크림빵이나 샌드위치를 보면 속 내용물이 너무 많아서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샌드위치는 좀 낫지만 크림빵에 빵보다 크림이 많으면 끝까지 넘기기 쉽지 않죠.(커피가 없다면요) 바로방의 슈크림은 바로 그 점이 좋았습니다. 고소한 빵 부분이 약 2/3, 크림은 1/3만 들어있어서 빵과 슈크림의 밸런스가 좋았어요. 야채빵은 플레인 고로케를 반 잘라 양배추 케찹 샐러드와 햄 한장을 끼워넣은 빵입니다.
주문진
- 위치 : 강릉 시내, 정동진 반대편으로 약 10km
- 주요 볼거리 : 가는 길 바닷가의 예쁜 카페들, 어시장, 그리고 도깨비 촬영 장소
제가 살던 부산 사직동 야구장 앞에 주문진 막국수라는 가게가 있습니다. 엄청 유명한 식당이에요. 어릴 때는 그 주문진이 이 주문진인 줄 몰랐죠. 사실 주문진이 강원도 다른 동네보다 막국수가 크게 유명한 것도 아닌데요. 하지만 마음 속 영원한 1타 막국수는 고향의 그 가게입니다. 그래서 주문진은, 몇 번 오지는 않았지만 그 이름만으로 친숙한 강릉의 시골입니다.
도깨비,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
드라마 도깨비의 시그니처 장면, 방파제에 서 있는 남녀 한쌍. 주문진 항과 거기서 남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영진해변 사이의 작은 방파제에서 촬영되었습니다. 그 드라마가 2016년 겨울에 방영되었으니 벌써 연으로 5년이나 지났네요. 20대 초반이었던 저는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떡국은 다섯번이나 먹었는데 왜 시간이 그렇게 많이흐른 것 같지 않을까요?
바다와 나란히 걸어간 사람들의 발자국 사이, 갈매기들의 발자국 또한 가득합니다. 발자국이 좋습니다. 특히 동물 발자국들요. 강아지나 고양이가 지나가고 남은 육구 자국도 좋고 힘찬 달음박질 뒤에 남은 말발굽자국도 좋고. 그 동물이 가진 귀여움의 에센스만 뽑아서 남겨놓은 것 같습니다.
도깨비 시장
-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학교담길 32-8
- 매일 10:00 – 21:00
- http://naver.me/GSi6ljb0
예쁜 카페입니다. 맛은 그렇게 특별하진 않고 가격도 웬만하면 7000원 이상으로 좀 비싼 편이지만 그 자리와 분위기로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주문진 항, 그리고 오징어 회
도깨비시장에서 한참을 앉아 바다구경을 하다 주문진 항으로 넘어왔습니다. 고작 몇백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어항과 해변은 냄새가 다르네요. 해산물 특유의 내음이 저 멀리서 전해집니다.
색색의 2층짜리 건물들이 곧게 뻗은 도로와 평행하게 발 디딜 틈 없이 딱 붙어 나란히 서있습니다. 건물이 좀 더 깨끗했다면, 그리고 전선이 땅 속으로 들어가 전깃줄과 전봇대가 보이지 않았다면 정말 그림같았을 거에요. 꼬질꼬질한 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월요일 오후 3시, 점심과 저녁시간 사이인데도 수산시장에는 관광객이 꽤 있었습니다. 학생들 손잡고 놀러온 가족도 있고 어르신 커플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2~30대 만 없었네요.
홍게를 비롯한 여러 해산물들이 프랑스 디저트 크로캉부슈처럼 듬뿍 쌓여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헤엄치는 오징어에 끌렸습니다. 이후 5분이 지나고 제 앞에는 오징어 회 한사바리(6마리)와 초장과 쌈 세트, 그리고 진로 소주 한 병이 놓였습니다. 이만원이었나. 오징어가 만원인데 쌈 세트 칠천원짜리는 필수로 시켜야 했습니다. 거기에 진로소주 사천원.
졸깃한 오징어 회가 이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듯 하다가 이내 목구멍으로 숨풍 넘어갑니다. 간장보다는 초장이 궁합이 더 좋았어요. 카드 결제가 안되는 아쉬움 하나만 남기고요.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삼십 명 카운트 할 때마다 소주 반 잔씩 마시다보니 금세 355ml가 텅 비었습니다.
주문진 시외버스터미널입니다. 정동진보다 조금 큰 동네라 터미널이 따로 있긴 합니다. 강변 동서울과 서초 남서울로 가는 시외버스 두 편, 그리고 속초, 강릉으로 가는 버스가 두 편 있습니다. 약간은 구깃구깃한데다 흰 빛이 바래가는 시간표 A4용지들. 여기저기 수정용지로 지운 다음 글자를 덧씌운 모습입니다. 원래 출력했던 시기를 짐작하긴 힘들지만 시국이 시국이라 그때보다 배차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미리 전화를 하거나 온라인으로 시간표를 숙지하지 않는 이상 주문진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하기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버스 하나를 코 앞에서 놓치면 한시간, 한시간 삼십분씩 기다려야 하는 모양새니까요. 저 역시 그런 상황에 마주해 시외버스가 아닌 일반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돌아왔습니다.
현대 장칼국수
- 강원 강릉시 임영로182번길 7-1 할머니현대장칼국수
- 매일 10:00 – 19:00 / 화요일 휴무
- http://naver.me/I5FcS0aH
숙소 근처에 미리 봐 둔 장칼국수 가게가 있었습니다. 여기도 주말에는 줄을 서는 유명한 가게라고 합니다. 사실 강릉 시내에 보통 이상 퀄리티의 가게라면 안유명하거나, 사람이 적은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관광객이 정말 많이 찾아오는 지역이지만 시내에 노포가 그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만큼 많진 않았거든요.
오전에 먹었던 국밥과 가격이 비슷합니다. 이 금액이 마지노선인 것 같네요. 일반적으로 칼국수 한 그릇 하면 5~6천원 정도 생각하는데 거기서 아주 조금 더 비싼 7천원. 여기까지 여행왔는데 고작 천원 이천원 더 비싸다고 음식을 안 사먹진 않죠.
이 가게의 칼국수 자체는 좋아요. 건더기도 나름 튼실하고 면발도 졸깃하고. 제가 아쉬었던 점은 이 장칼국수라는 음식 자체의 특성이에요. ‘고추’장 칼국수. 조금 텁텁한 맛이 날 수 밖에요. 식당에서 파는 된장 고추장처럼 된장의 강한 향과 맛으로 고추장의 텁텁함을 덮는다면 모를까, 베이스가 칼국수 멸치 해물 국물이니 장의 텁텁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오이나 민트는 맛있는 재료지만 누구에게는 정말 안맞는 것처럼요.
마무리
저녁에 술집이나 횟집에 들어가 술을 진탕 마시는 일정이 아니라 하루가 꽤 일찍 끝났습니다. 장칼국수를 먹고 숙소에 돌아오니 저녁 여덟시. 하루를 복기해보니 역시 최고는 오징어 회와 소주였습니다. 두번째는 정동진의 맑은 바닷가. 역시 혼자 회 먹을 땐 오징어가 최고에요.